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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부탁해 - 스무살 그녀들의 성장일기

by 째즈밤 2016. 10. 25.

생각해보면 저에게도 스물이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고양이로 치자면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의 고양이라고나 할까요?

아니면 집고양이로 덜 길들여진 상태에서 야생으로 뛰쳐나온 고양이 일 수도 있었겠네요.



불안과 호기심, 때로는 막연한 꿈과 대책없는 용기.

시간이 흘러서 나이를 먹어가고 서서히 길들여진 지금의 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물론 아직도 온순한 집고양이는 아닌듯 합니다.

밤만되면 이 지붕에서 저 지붕으로 어슬렁거리는 도둑고양이 정도일수도 있겠네요.

인생에 대한 알수없음은 여전하되 꿈과 용기만 서서히 사그러져 가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서글퍼지기도 합니다.

고양이를 부탁해는 스무살 사회초년생 여자아이들의 이야기지만 그녀들만의 이야기같지 않은 느낌은 그 까닭일 것입니다.


중산층 가정의 답답하고 구태의연한 일상으로부터 탈출을 꿈꾸는 몽상가 태희와 멋진 커리어우먼과 화려한 서울을 동경하는 공주 혜주.

유학을 꿈꾸기도 하지만 병든 조부모와 고아나 다름없이 살면서 가난과 구질구질한 일상에 치여서 살고 있는 지영.

어쩌면 가장 유쾌하게 자신들의 삶을 빚어나가는 쌍둥이 비류와 온조.



여기 다섯명의 스무살 그녀들이 있습니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 가득찬 고양이의 눈매를 하고서 인생이라는 알 수 없는 길에 조심스럽게 한걸음을 내딛는 그들이 있습니다. 


젊은 여성감독 정재은님의 장편 데뷔작입니다.

언젠가 감독 본인도 거쳐왔을 스무살을 여성특유의 섬세한 시선으로 그녀들을 지긋이 바라다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할 얘기가 많았을 것임에도 구차한 이야기는 하지 않습니다.

단지 스무살 그녀들을 애정어린 눈빛으로 담담하게 지켜볼 뿐 입니다.

마치 어떤 섣부른 이야기도 사족이라는 듯이 말이지요.



고양이를부탁해는 촘촘히 잘 짜여진 그물같습니다. 영화의 배경설정부터 다섯아이들의 상황에 대한 섬세한 묘사 그리고 다섯 배우 아이들의 연기까지 말이지요. 영화곳곳에는 스무살 여자아이들 만큼이나 참신하고 섬세한 장치들이 눈에 보입니다.


카메라가 훑어내는 인천이라는 도시의 곳곳 풍경은 스무살 아이들의 불안함과 황량함을 조용하게 이야기하기에 더없이 적합한 공간인 듯합니다. 또한 감독은 미래의 그녀들이 될 수도 있는 지영의 할머니, 태희의 엄마, 부두 작업장의 아줌마들에 대한 시선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특히 할머니의 우물우물 총각김치를 씹는 모습은 지영의 참담함을 나타내기에 너무나도 사실적인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핸드폰을 통한 다섯 그녀들의 의사소통을 시각적으로 재현한 것 역시 참신합니다.

한두명도 아닌 다섯명의 주인공을 모두 붙잡으려다 영화가 파편화될 수 있음에도 감독은 이상하리만치 신기한 재주로 다섯 고양이 모두를 따로 또 같이 멋드러지게 표현해냅니다. 핸드폰과 고양이 티티를 통해서 말이지요.



그러고 보니 문득 가르시아감독의 <그녀를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것>과 느낌이 통하는 듯도 합니다.


하지만 사실 <고양이를 부탁해>가 매우 짜임새있고 완성도있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뭐랄까 저하고는 약간의 이질감이 느껴집니다.

맵고 짠 뭔가 강렬한 음식에 길들여진 저로서는 은은하고 싱거운 맛이랄까요?


에피소드들을 좀더 추가해서 드라마의 굴곡을 좀더 줄 수는 없었을까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영화의 질적 성장을 기대하는 이로서는 반가운 일임에는 틀림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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