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쉘 위 댄스(1996)~ 사교댄스의 세계로

by 째즈밤 2016. 9. 29.

영화 <쉘 위 댄스>의 주인공인 스기야마 아저씨는 대기업의 경리과장으로 아내와 자식을 둔 평범한 40대 중년 남자.

영화에서 보기에 그는 그는 정말 평범한 사람입니다. 가정 생활도 평범, 회사 생활도 평범.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 보면 무료함과 권태로움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뜨끔하네요)

스기야마의 모습은 세상을 살아가는 남자들의 보편적인 모습입니다.




누구나 일탈을 꿈꾸고 새로운 것을 시도합니다. 암벽 등반 같은 위험한 스포츠에 도전한다거나 봉사 활동에 치중하거나 종교에 빠진다거나 하는 행위가 모두 이런 일탈 심리를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일탈의 극단적인 예로 데이빗 핀처의 영화 <파이트 클럽>의 주인공 에드워드 노튼을 들 수 있겠네요. 그의 캐릭터는 영화 속에서 두 개의 자아로 분열하지요. 하지만 <쉘 위 댄스>는 <파이트 클럽>처럼 어둡고 음침한 영화가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에 있는 영화이지요. 그렇다면 스기야마 아저씨는 어떻게 일상 일탈을 이뤄나갈지를 한번 보겠습니다.


영화에서 스기야마는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 갈 때마다 매번 창문 밖으로 뭔가를 쳐다보고는 합니다. 그건 바로 불 켜진 사교 댄스 강습소, 그리고 그 창문 너머로 춤을 추는 아리따운 여인.

이 모습은 스기야마 아저씨의 가슴에 불을 당깁니다! 스기야마 아저씨는 몇 번을 망설이다가 댄스 강습소에 쑥스럽게 들어섭니다. 


이 또래 남자들에게 뭔가 새로운 것을 시작한다는 것은 굳이 사교 댄스가 아니더라도 어색하고 쑥스러운 게 사실이지요. 


그렇다면 스기야마는 사교 댄스를 자기 생활의 탈출구로 택한 것일까요? 분명 처음에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미지의 여인이 주는 신비로움에 끌렸다는 게 맞을 것 같네요. 그래서 스기야마는 마이에게 저녁이나 같이 하자는 말을 하는 겁니다.

저녁 데이트 신청을 거절 당한 후 스기야마는 진정으로 댄스에 몰입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댄스의 묘미를 알게 되고 기쁨을 느끼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는 자기 자신에 대한 새로운 발견입니다. 스기야마는 사교 댄스를 통해 일상의 일탈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지요.



한편으로 스기야마의 행동 흐름에는 청소년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성에 의해 인정받고 싶어하는 심리가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감성은 나이를 먹는다고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점점 스스로를 숨겨가게 되고는 합니다. 

사회적 지위와 체면 뭐 그런 것들 때문이겠지요. 스기야마는 관객들에게 이 부분까지 솔직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이 때문에 춤을 추었고, 그 여자 때문에 춤을 추며 즐거워하는 새로운 자기 자신을 발견한 것이지요. 


영화 마지막 부분에 스기야마는 마이와 춤을 추고 싶다는 소망을 결국 이루게 됩니다. 

댄스 대회에 나가서 우승하는 따위의 결론보다 마이와 춤을 추는 장면으로 마무리짓는 스기야마의 일상 일탈 경로는 참으로 소박합니다. 


현대 사회에서 스기야마 또래의 대다수 남자들은 자신들의 일상에 만족하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불만과 공허를 풀어가는 방법은 각자 다릅니다.

<파이트 클럽>의 에드워드 노튼과 <쉘 위 댄스>의 스기야마처럼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경우는 각각의 영화가 추구하는 의미가 다른 것이겠지요.



어쨌든 스기야마 아저씨는 자신이 열중할 수 있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그것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삶의 또다른 활력과 의미를 찾았습니다. 

이것은 자기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하는 과정이며, 삶이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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